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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45) 통합 금감원 출범
1999년 1월 4일 출범한 통합 금융감독원. 인사 태풍은 예견된 일이었다. 4개 감독원이 하나로 합쳐지니 자리가 줄고 경쟁이 치열했다. 사진은 99년 1월 4일 서울 여의도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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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44) 부실기업, 시장이 알아서 감시하다
1998년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재벌 개혁을 ‘야생마 길들이기’에 비유했다. 야생마를 통제하듯이 재벌 개혁도 점진적으로 시스템을 통해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주장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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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43) DJ에게 일부러 야단맞다
1999년 6월 18일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금감위에서 1차 기업 퇴출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55개 기업이 퇴출됐다. DJ의 두 차례 질책 끝에 나온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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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42) 물 건너 간 ‘64조+ α’
공적자금은 DJ 정권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집권 초기엔 모자라 쩔쩔맸고, 중반기부턴 “돈을 헤프게 썼다”며 정치공방이 벌어졌다. 2001년 1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공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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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41) 제일은행 달간의 끝장 토론
3개월간의 ‘끝장 토론’ 끝에 정부는 뉴브리지와 제일은행 매각 투자약정서를 체결한다. 1999년 12월 22일 매각 본계약 서명식이 서울 충무로 1가 제일은행 본점에서 열렸다. 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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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40) 제일은행 팔면 내가 죽고 안 팔면 나라가 …
1999년 여름, DJ 방미를 앞둔 청와대는 조급했다. “제일은행 매각을 빨리 성사시키라”며 금융감독위원회를 채근했다. 2000년 3월, 1년을 끌어온 인수 본 계약이 마무리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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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9) 제일은행 뉴브리지의 등장
울며 겨자 먹기로 국제 사회에 “팔겠다”고 약속한 제일은행. HSBC의 배짱 협상에 쩔쩔매던 정부 앞에 나타난 미국계 투자펀드 뉴브리지캐피털은 파격 제안을 한다. 이헌재 금융감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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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6) 은행 구조조정 명동성당 천막 협상
1998년 9월 28일. 이튿날로 예고된 금융노련 총파업을 막기 위해 서울 명동성당 농성장을 찾은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오른쪽)이 단식농성 중인 추원서 금융노련 위원장과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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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4) 은행 구조조정 초대 한빛은행장 김진만
1998년 12월 21일 상업·한일은행 합병추진위원회를 방문한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가운데)이 박영철 합병추진위원장(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두 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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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3) 은행 구조조정 상업·한일 합병
1998년 7월 31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배찬병 상업은행장(왼쪽)과 이관우 한일은행장이 합병 발표 후 환하게 웃고 있다. 6월 말 은행 경영평가에서 ‘조건부 승인’ 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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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2) 은행 구조조정 합병을 권하다
1998년 6월 초 전철환 당시 한국은행 총재(그림)는 상업·한일·조흥은행장을 불러 합병을 권한다. 같은 달 중순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6개 은행장만 만찬에 초대한 것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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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1) 은행 구조조정 5개 은행 영업정지
1998년 6월 29일, 서울 적선동 동화은행 본점에서 동화은행 노조원들이 금융감독위원회 직원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이날 영업정지 된 다섯 개 퇴출은행에선 노조원들이 전산망을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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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0) 은행 구조조정 충청은행을 맡기다
1998년 6월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국제금융공사(IFC)의 제말 우 딘 카슘 부총재(왼쪽)와 김승유 하나은행장이 투자협정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IFC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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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29) 은행 구조조정 은행 살생부
1998년 6월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5개 퇴출은행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즉시 이들 은행은 영업 정지됐다. DJ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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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28) 은행 구조조정 12개 부실은행 평가
1998년 6월 하순 은행 경영평가위원회는 열흘간 합숙하며 퇴출 은행을 솎아냈다. 중압감 속에서 진행된 세계 최초의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6월 29일, 퇴출이 결정된 경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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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잠을 자?" 최고 엘리트, 휴일 없이 밤샘 근무시키며…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구조개혁기획단은 구조조정 업무를 위해 한시적으로 만든 조직이었다. 1998년 4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현판식은 5월 11일 서울 여의도 증권감독원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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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26) 기자들도 도와준 구조조정
1998년 4월 출범한 금융감독위원회는 정부 부처로는 처음 브리핑룸을 설치하는 등 언론 홍보에 공을 들였다. 사진은 99년 11월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대우 기업개선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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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25) 대변인에게 경고하다
1998년 4월 취임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대변인직을 새로 만들고 그 자리에 김영재(그림) 당시 증권감독원 국장을 앉힌다. 이 위원장은 그에게 개혁을 위한 대국민 홍보와 조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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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해체는 음모라고? … DJ도 힘쓸 상황 아니었다
그룹이 해체된 지 10여 년, 대우 김우중 회장의 세계 경영 공과(功過)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대우 해체 과정을 둘러싼 음모론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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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22) 김우중과 나 대우 부도 막아라
1998년 가을, 시장은 눈에 띄게 대우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그해 11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수행한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왼쪽)이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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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6) 삼성차 법정관리와 노무현
1999년 6월 말, 삼성자동차가 법정 관리를 신청하자 부산 민심은 벌집을 쑤신 듯했다. “호남 정권이 부산 죽인다”는 반발에 정부는 대책 마련에 고심한다. 같은 해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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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5) 대우·삼성 총수 빅딜 직접 중재
빅딜은 목숨을 건 승부였다. 삼성과 대우는 삼성차 인수가격과 자동차 생산조건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규성 재경부 장관과 이헌재 금감위원장까지 나서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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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3) TJ 통해 DJ와 간접대화
1998년 3월 7일 서울 마포 자민련 총재실에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내정자(왼쪽)가 박태준 당시 자민련 총재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후 박 전 총재는 월요일마다 이 위원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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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0) 구본무 회장과 통음
재벌 그룹 간의 대규모 사업 교환-빅딜(Big Deal)은 김대중 대통령식 재벌 개혁의 핵심이었다. 1998년 말 LG는 정부로부터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라는 전방위 압력을 받는다.